安龍寬
1894-09-1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용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경 중국 관전현(寬甸縣)에서 의군부(義軍府), 1924년경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와 참의부(參議府), 1932년 국민부(國民府) 등에서 활동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준정부적인 성격을 지닌 독립운동단체로 조직되었으며, 한인사회의 자치행정과 항일무장투쟁에 주력하였다. 총장에는 김동삼(金東三), 부총장은 채상덕(蔡相悳)이었다. 안용관은 1919년경 의군부 참사(參事)로 활동하고, 1924년경 대한통의부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2월 6일 봉천성(奉天省) 환인현(桓仁縣)에서 국민부와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통화영사관경찰서(通化領事館警察署)에 체포되었다. 1932년 5월 2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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