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宇震
1906-09-09 ~ 1933-09-01·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安鳳鶴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우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안우진은 함경북도 온성(穩城)출신으로 경성농업학교(鏡城農業學校)를 졸업하고 면사무소(面事務所)에서 잠시 근무하였으며, 1931년 1월경 온성군 온성면에서 최소아지(崔小亞支)의 권유를 받고 재조직 중인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온성군회(穩城郡會)에 가입하였다. 이후 5월말 온성군 유포면(柔浦面) 최병진(崔炳軫)의 집에서 최령(崔領), 전창록(全昌錄), 이봉남(李鳳南), 박학송(朴鶴松) 등과 회합하고 고려공산청년회 온성군회를 조직할 운동방침과 향후 계획에 대하여 여러 차례 협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온성군회 선전부(宣傳部) 책임으로 임명되어 동회(同會)의 조직을 위해 여러 차례 활동을 해오던 중 1931년 7월 말 나남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안우진은 1933년 7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고 복역 중 병보석(病保釋)으로 출옥하였으며, 1933년 9월 1일 자택에서 정양 중 옥고(獄苦)의 여독(餘毒)으로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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