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元必
(187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원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용담(龍潭) 출신으로 1909년 덕유산(德裕山)에 근거를 둔 문태수의진(文 泰洙義陣)에 참여하여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문태수는 경남 안의(安義) 사람으로 1905년 11월 을사늑약 이후 의병을 일으 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1906년 지리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북 무주(茂州)에 서 의병 수 십 명을 이끌고 덕유산으로 가던 중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여 여 러 명을 사살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하순 전북 장수읍을 점령하고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여 적군 3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7년 문태수 의진은 전북 무주 부남면 고창곡(高昌谷)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적군 40여 명을 사살하고 총기 50여 정을 노획하는 등 큰 전공을 세웠다. 1907년 12 월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편성된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에 참여하여 호남창의대장(湖南倡義大將)으로 추대되었다. 안원필은 문태수의진에 참여하여 전북 장수군 계북면(溪北面) 문성동(文城洞) 뒤의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1909년 5월 5일 밤부터 안원필은 고원중 (高元仲)·원도숙(元道淑)·고명주(高明柱)·김준대(金俊大)·신치수(辛致守)·안 왈오(安曰五)·심우상(沈尤相)·조경화(趙京化)·하준태(河俊太)·한청여(韓淸 汝)·성문오(成文五)·성재홍(성재홍)·성준문(成俊文)·김경선(金京先)·박창선 (朴昌先) 등 20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장수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안원필은 1909년 9월 20일 체포되어 소위 폭동죄(暴動罪)로 기소되었다. 1909 년 10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태형(笞刑) 10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3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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