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載學
1852-09-16 ~ 1912-02-18·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재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광주(光州) 출신으로 1896년 1월 1일 의병장 김하락(金河洛)이 결성한 이천수창의소(利川首倡義所)의 종사(從事)로 참여하여 경기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1896년 1월 1일(음 1895. 11. 17) 경기도 이천에서 김하락이 경기도 각처의 의병을 규합하여 이천수창의소를 결성하였다. 김하락은 1월 17일 백현전투(魄峴戰鬪)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으나, 2월 12일 이현전투(利峴戰鬪)에서는 크게 패하고 말았다. 2월 28일 김하락은 광주산성의진(廣州山城義陣)·양근의진(楊根義陣) 등과 합세하여 남한산성의진(南漢山城義陣)을 수립하고 서울진공작전을 계획하였으나 3월 22일 남한산성전투(南漢山城戰鬪)에서 관군에게 패전하였다. 4월 7일경 이천의진(利川義陣)의 대장에 추대된 김하락은 영남으로 이동하였다. 4월 28일 의성에 도착한 김하락은 의성의진의 대장 김상종(金象鍾)의 요청에 따라 5월 13일 이천(利川)·의성(義城)·청송(靑松) 3의진으로 의성연합의진(義城聯合義陣)을 결성하고, 청송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 혹 城隍峴戰鬪)·의성 비봉산전투(飛鳳山戰鬪)에서 관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6월 15일 경주로 이동한 이천의진은 경주 지역의 유림과 연합하여 경주연합의진(慶州聯合義陣)을 결성하고, 6월 17일 경주성을 공략하여 점령하였다. 그러나 6월 23일 경주성전투(慶州城戰鬪)에서 대구부와 안동진위대의 관군에 패하고 말았다. 경주성전투에서 패한 김하락의 이천의진은 영덕을 거쳐 영해로 가던 중 영덕의 남천전투(南川戰鬪)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중상을 당한 김하락은 영덕 오십천(五十川)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안재학은 의병장 김하락(金河洛)이 결성한 이천수창의소(利川首倡義所)의 종사(從事)로 참여하여 경기도 이천과 남한산성 일대에서 일본군과 관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그 후 영남으로 이동하는 김하락을 따라 의성에 도착한 안재학은 의성연합의진에 참가하여 의성·청송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그리고 경주연합의진이 전개한 경주성전투에서는 우익장(右翼將)을 맡아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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