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廷吉
미상 ~ 1925-03-16·조선
이명·자·호 安貞吉, 安鼎吉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정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참의부(參議府)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안정길이 활동한 참의부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이념문제로 대한통의부와 의군부(義軍府)로 분열되었을 때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통의부 의용군내 제1·2·3·5중대가 임시정부와 연계를 맺고 조직한 압록강 연안지역을 관할하는 독립운동단체이다. 이 참의부는 중앙의회를 가지고 군사와 민정을 아울러 통괄하는 단체였으며, 창설 당시의 주요 부서와 간부는 참의장 겸 제1중대장 백광운(白狂雲), 제2중대장 최석순(崔碩淳), 제3중대장 최지풍(崔志豊),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대(金蒼大), 훈련대장 박응백(朴應伯) 등이다. 참의부는 활발한 군사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제1중대장 백광운과 제2중대장 최석순에 이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백광운이 피살된 후에는 최석순이 참의장겸 제2중대장으로 있으면서 군사활동을 주도하였다. 안정길도 참여한 참의부의 군사활동은 국내진격전으로 대표된다. 참의부는 압록강 유역과 접하고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경을 넘어 일본군 초소를 습격하는 등 활발한 대일항쟁을 전개하였다. 「독립신문」1924년 7월 26일자에 실린 통계만 보더라도 참의부 군대는 1924년 4월부터 7월 16일까지 20차례 정도 국내에 진격하여 군자금 모금 및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물론 계절적으로 독립군이 자연을 이용하여 대일투쟁을 하기 가장 좋은 시절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상당히 많은 숫자라고 하겠다. 아울러 이 통계에 따르면 독립군들은 평안도 의주군·초산군·강계군·선천군·영변군·위원군·태천군·용천군·자성군 등 평안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적으로 평안도지역이 많은 것은 압록강 대안이 평안도지역이라는 지역적인 이점 외에 참의부의 주민과 독립군 병사들 가운데 평안도 출신이 많아 이곳 지리에 밝았으므로 효과적인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제1중대 2소대 1분대장이었던 안정길은 1924년 국내의 평북 강계(江界)에 출동하여 적 2명을 사살하고, 아울러 연광사무소(鉛鑛事務所)를 소각하였다. 그리고 동년 5월에는 남만주의 군인대표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단합할 것에 서명하였다. 이처럼 참의부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던 안정길은 1925년 3월 만주 집안현(輯安縣) 고마령(古馬嶺)에서 제2중대장 최석순과 전창희(田昌禧), 최항신(崔恒信) 등 동지 29명과 함께 국내진입작전을 위한 회의에 참가하였다. 이 정보를 탐지한 초산(楚山)경찰서에서는 연담(蓮潭)주재소 경부보(警部補) 수야택삼랑(水野宅三郞)의 지휘로 순사부장 고피득(高彼得), 밀정 박죽파(朴竹坡) 외 총 65명이 6개 분대를 조직하고 김명준(金明俊)을 체포 고문하여 참의부 통신원임을 자백 받은 후 고마령 산중에서 회의를 하던 참의부원들을 습격하였는데, 이 때 안정길도 동지들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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