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貞錫
1883-09-13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朴貞錫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정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3년 김경희(金敬喜)·황애덕(黃愛德) 등과 함께 여성들의 항일구국의식 함양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송죽회(松竹會)를 조직하였다. 동회는 이후 중년 여성(松兄弟)과 젊은 여성(竹兄弟)을 고루 포섭하여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회비와 자수 등을 통해 군자금을 모금하여 국외 독립운동기지에 전달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평양에서 만세시위를 준비하던 광성(光成)·숭의(崇義)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집을 모의장소로 제공하고 항일격문·태극기 등의 제작에 필요한 경비도 부담하였다가 일경에 붙잡혀 3주일에 걸친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1919년 11월 감리파와 장로파의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가 통합하여 확대·조직된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의 회장에 선임되어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동회는 재무부·교통부·적십자부의 부서를 갖추고 평양을 비롯한 서북지역의 부인회 조직을 동회의 지회조직으로 흡수하였으며 본부는 지회의 연합체적 성격을 띠었다. 동회는 이후 항일독립사상의 고취와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힘써 2천 백여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는 일경에 붙잡혀 1921년 2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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