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千壽
1913-11-19 ~ 1963-03-20·현대
이명·자·호 安鎔觀, 安鎔元
경북 울진(蔚珍) 사람이다. 그는 1934년 12월 27일 울진군 서거면(書居面) 윤경복(尹敬福)의 이발소에서 황명칠(黃明七)·안태열(安泰烈)·안병극(安炳極) 등과 모임을 갖고 국내 정세를 논의하였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일본인은 일시동인(一視同仁) 운운하면서도 제도적으로 민족차별을 하고 있으며 일제는 결국 한국인을 아사(餓死)시킬 것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조국독립운동을 위한 항일결사를 조직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하여 이들은 조직결성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던 중 일경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1935년 9월 13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불경죄 및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동년 10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울진군 건국준비위원회(建國準備委員會)의 사찰과장(査察課長)으로 활동하다가 1947년 신병으로 사직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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