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喆載
1886-05-27 ~ 1921-04-2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철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안성(安城) 사람으로, 1919년 4월 1·2일에 걸쳐 안성군 원곡면(元谷面)·양성면(陽城面) 일대에서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이근수(李根洙)·이덕순(李德順)·최은식(崔殷植)·이희용(李熙龍)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4월 1일 오후 8시경 외가천리(外加川里)에 있던 원곡면 사무소 앞에서 1천여 명의 독립만세 시위군중들과 독립만세를 외치고 태극기와 횃불을 들고 일본인 면장을 끌어내어 양성면 동항리(東恒里)로 행진하였다. 도중에 원곡면과 양성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을 비롯한 주동자들이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연설을 하고, 양성면과 원곡면내의 경찰 주재소·면사무소·우편소등을 파괴하고 일본인 거주자를 축출시키기로 결의하였다. 이날 밤 9시 30분경 양성면민들로 구성된 수백명의 만세시위대가 경찰 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9시 50분경 해산하여 돌아가던 길에 원곡면에서 행진하여 오던 만세시위대와 합세하여 오후 10시경 다시 주재소로 쇄도하였다. 이 때 그는 투석으로 유리창을 부수고 불타는 주재소 건물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양성 우편소를 습격하여 투석으로 창문을 부수고, 다시 그 동일에서 일본인 외리여수(外里與手)가 경영하는 잡화점으로 가서 상품을 파기하는 등 격렬하게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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