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崔彦
미상 ~ 1909-10-13·조선
이명·자·호 安參奉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최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임창모(林昌模) 의진에서 활약하였다. 일제는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여 군대까지 해산함으로써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안최언은 이 같은 시기에 전남 보성 일대에서 활약하던 임창모의진에 참여하였다. 임창모(林昌模)는 1906년 양회일(梁會一)과 함께 능주(綾州)에서 거의하였으나 붙잡혀 지도(智島)로 유배되었고 의진은 곧 해산되었다. 1908년 유배에서 풀려나 귀향한 임창모가 보성 일대의 의병장 안규홍(安圭洪)과 함께 다시 의거의 기치를 드높였고 여양만(與陽灣) 일대에서 적 수십 명을 살해하고 다시 순천(順天)에서 출동한 일군을 격퇴시켰다. 안최언은 임창모와 함께 1909년 10월 13일 보성군 복내면(福內面) 묵석리(墨石里)에서 미촌(梶村)중위가 이끄는 일본군과 접전하던 중 의병장 임창모·임학규(林學奎) 등과 함께 붙잡혀 현장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3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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