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宅洙
1885-10-22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安澤洙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안택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평북 정주군(定州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주군의 첫 독립만세운동은 3월 5일에 있었다. 이날 오후 1시 반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이 읍내를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해산하였다. 이어 3월 31일 정오가 되자 읍내 정주우편국 앞에는 독립선언서가 배포되고, 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렸다. 신안(新安)ㆍ동주(東州)ㆍ고현(高峴) 등의 면에서는 읍성(邑城)의 동문(東門)으로, 언(伊彦)ㆍ덕달(德達)ㆍ아이포(阿耳浦)ㆍ마산면(馬山面)에서는 남문으로, 그리고 임해면(臨海面) 일대에서는 서문으로 밀려들었다. 모여든 시위 군중이 무려 25,000여 명에 이르자, 헌병이 총격을 가해 해산되었다. 안택수도 정주군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1919년 4월 5일 평양지방법원 정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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