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鳳濟
1896-11-28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梁龍河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양봉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2년 서로군정서 대원으로 평북 강계군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일본군과 교전하였고, 1924년 참의부 부원으로 평북 위원군 화창면의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였으며, 1928년 참의부 중대장 대리·소대장으로 활동하다가 친일단체 한족동향회의 밀고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2년 2월경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중대장 백광운(白狂雲)의 명령으로 이화주(李華周) 등과 함께 평북 강계(江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다. 1924년 5월 참의부(參議府) 제2소대 제2분대 참사(參士) 김창균(金昌均)의 지휘로 김원철(金元喆) 등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였다. 7월 평북 위원군(渭原郡) 화창면(和昌面) 소재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였고, 강계에서 신의주-강계를 연락하는 전신주 5본(本)을 절단하여 통신을 차단하였으며, 9월에는 위원군 봉산면(鳳山面)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면서 4개월 동안 활동하였다. 1925년 9월 제1중대 부사(副士), 1926년 1월 제2중대 부사를 거쳐 같은 해 봄, 제3중대장으로 승진하였고, 1927년 3월에도 제3중대장으로 근무하였다. 1928년 중대장 대리 겸 소대장으로 활동하던 중, 1928년 10월 24일 친일단체 한족동향회(韓族同鄕會)의 밀고로 제4중대장 김상옥(金相沃) 등과 함께 일본 통화현영사관 경찰들에게 체포되었다. 1932년 3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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