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永萬
(1875) ~ 1909-05-23·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양영만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남원(南原) 사람이다.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에는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대한제국군 출신의 해산 군인을 비롯하여 평민 의병부대가 거의하여 의병전쟁을 전민족적 운동으로 발전시켜 갔다. 이와 같이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양영만은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이석용(李錫庸)의진에 소속되어 전남 순천(順天)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이석용 의병장은 1907년 8월 전북 진안(鎭安)에서 거의한 후, 기삼연(奇參衍)의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所) 의진과 합진(合陣)하여 전북 고창(高敞)의 일군 병참(兵站)을 습격, 무기를 확보하는 등 활동하였다. 또한 김동신(金東臣)의진과 연합하여 용담의 심원사(深源寺)에서 왜적 수 십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1908년 기삼연 의병장의 순국 후에는 독자적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여 남원에서 일군 장교를 격살하는 등 의세를 떨쳤다. 이와 같은 이석용 의진에서 활동하던 양영만은 박덕삼(朴德三)과 함께 적정탐지(敵情探知)를 명령받고 1909년 5월 2일 의진을 출발하여 순천, 여수(麗水) 양군의 정찰을 마치고 5월 22일 돌산읍(突山邑) 주재소와 감시초병 숙사 등을 정찰하던 중 붙잡혔다. 그는 일본 군경(軍警)의 합동취조를 받던 중 감시 소홀을 틈타 송림 속으로 탈출하였으나 출동한 일군에 의해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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