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俊國
1898-09-14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梁白山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양준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8년 4월 중국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고산자(孤山子)에서 정의부원(正義府員) 이한영(李漢永)의 권유로 동단(同團)에 가입해 제3중대 서기(書記)로 활동하였다. 1930년 5월에는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참사(參士)로 통화현(通化縣) 육도강(六道江) 황사일(黃士日)의 집에 부하를 파견해 의무금(義務金)을 징수하는 한편, 이영관(李永寬)ㆍ사병익(史秉益)을 통화현 사도강(四道江)에 파견해 국민부(國民府) 지부(支部) 조직 명령서를 전교(轉交)하였다. 주로 중국 측과의 교섭 및 문서통달 사무에 종사하였다. 조선혁명군은 정의부 주도세력이 결성한 국민부 산하의 군대로 1927년 9월 정의부 중앙회의(中央會議)에서 정의부의용군(正義府義勇軍)의 명칭을 조선혁명군으로 변경한 후 그 명칭이 그대로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혁명군은 국민부와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휘하의 군사조직으로 활동하였으며, 만주사변 이전에는 친일세력과 일제 중요 기관에 대한 공격에 주력하였다. 양준국은 1932년 봉천영사관경찰(奉天領事館警察)에 체포되어, 1933년 1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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