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昌求
(189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양창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천군 마장면(麻長面)의 3.1운동은 1919년 3월말에 크게 일어났다. 3월 30일 마장면 오천리(午川里) 오천 장터에서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관리(冠里) 인사인 이기재(李起載)·이창호(李昶鎬)는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결의하여 ‘3월 30일 오천 장날 장터에서 집합하라’는 통문(通文)을 작성해 각 마을에 배포하였다. 3월 30일 오전 9시경 마장면 면내 주민들은 통문에 따라 양촌리(陽村里) ‘사회마당’에 집합하였다. 양창구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군중들에 합류했다. 운집한 군중들은 이기재·이창호의 주도하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 군중들이 음지다리를 건너고자 할 때, 일본 헌병대는 시위대를 포위하고 발포하며 강제 해산시켰다. 다음 날에는 변장한 헌병보조원들이 각 마을을 돌며 시위했던 사람들을 체포하여 이천헌병분견소(利川憲兵分遣所)로 압송하였다. 양창구는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헌병에 붙잡혔다. 4월 17일 이천헌병분견소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60도(度)의 즉결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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