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昌西
(1860) ~ 1910-03-20·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양창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순창 출신으로 전북 일원에서 활동하던 김동구의진(金東九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지원하였다. 의병장 김동구는 1909년경 김막동(金莫同)·김상천(金祥千)·박치근(朴致根)·한자선(韓自先)·박화숙(朴化淑)·최석봉(崔石奉) 등과 함께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김동구는 1909년 4월경부터 10월까지 전북 옥구(沃溝)·남원(南原)·임실(任實)·순창(淳昌)·태인(泰仁)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양창서는 의병장 김동구의 휘하에서 1909년 4월 22일 남원군 성남면(城南面) 유촌(柳村)의 임영조(林永朝)의 아들 임정규(林檉圭)를 납치하고, ‘군자금 1천 냥을 기부하라’고 협박하는 등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지원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7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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