魚洛伊
(187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어낙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일제는 1907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다. 한편 8월에는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것을 계기로 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어낙이는 1908년 음력 1월경 의병 50여 명을 만나 의병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고 포군(砲軍)으로 의병에 참여하였다. 1908년경 의병 30여명과 함께 흥해군(興海郡) 북안면(北安面) 수성동(守成洞)의 동장에게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8년 음력 3월 13일경까지 청하·청송·영천 등지에서 군자금·군수품을 모집하였다. 4월 13일경 오전 11시 주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일본군이 사격을 가하자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일초장(一哨長) 윤재만(尹在萬) 외 7명이 사살되었다. 어낙이는 포군이었던 차경수(車敬守)·이주발(李周發)·조양동(趙良洞)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들은 도주를 시도했으나 모두 사살당하고 어낙이만 다시 체포되었다. 1908년 10월 9일 대구지방재판소(大邱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 및 살인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7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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