嚴達昇
1900-02-29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嚴達元, 嚴達承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엄달승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2년 중국 봉천성(奉天省) 환인현(桓仁縣) 상루하(上漏河) 이도양차에 소재한 천마산대(天摩山隊)와 참의부(參議府) 등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음력 5월경 천마산대 대원 김준언(金俊彦) 등이 평북 희천군(熙川郡)에서 군자금을 모집할 때 천마산대에 가입하였다. 천마산대는 3ㆍ1운동 직후인 1920년 3월경 최시흥(崔時興) 등이 조직한 무장투쟁 단체로, 평북 의주군 고령삭면(古寧朔面) 천마산을 근거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령장은 최시흥, 부관은 최지풍(崔志豊), 참모는 박응백(朴應伯)ㆍ박영찬(朴泳燦)ㆍ최윤희(崔允熙), 경리는 김세진(金世鎭), 중대장 최의집(崔義輯), 소대장 김상옥(金尙玉)ㆍ김용택(金龍澤) 등이었다. 규모는 최대 200명 정도였으며, 군자금 모집, 일제 식민지 통치기관 공격, 일본 군경 및 친일분자 처단, 일본군과 교전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음력 5월 동지 김준언 등과 희천군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음력 6월 허신호 등 6명과 희천군 동창경찰관주재소(東倉警察官駐在所)를 공격하였다. 1923년 음력 7월 상순경 동지들과 함께 희천군 서면(西面) 평원동(平院洞)과 7월 25일경 희천면 가라지동(加羅之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4년 겨울 참의부에 들어가 1925년까지 희천군 내에서 군자금으로 600여 원을 모집하였고, 같은 해 11월 25일 안창제 등과 함께 일제 밀정 노릇을 한 정찬성을 징치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8년 12월 21일 신의주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ㆍ살인미수ㆍ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1929년 1월 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7년 3월 21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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