嚴雨龍
1900-12-30 ~ 1960-09-2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嚴俊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엄우룡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신흥(新興) 사람이다. 1918년 함남 신흥에 소재한 사립 영춘학교(永春學校)를 졸업한 후 1919년 2월 간도(間島)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면학 중 같은 해 8월 교관 신동천(申東天)으로부터 군자금 모집의 명령을 받고 입국하였다. 1919년 9월 안주(安州)·평양(平壤) 등지에서 군자금과 무관학교 학생모집을 위해 활동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4일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20년 10월 의열단(義烈團) 간부 김상옥(金相玉)의 권유로 유득신(劉得信)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 모집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21년 11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공갈죄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