嚴一奉
(1877) ~ 1910-08-23·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엄일봉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음력 3월부터 10월까지 전북 순창군(淳昌郡) 일대에서 최산흥의진(崔山興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최산흥 의병장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1906년 10월부터 약 3년 동안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6년 10월 이경춘의진(李慶春義陣)의 도십장(都什長)으로 활동하다가 1907년 후반부터 이석용의진(李錫庸義陣)의 검찰(檢察)로 활약하였다. 1908년 중반에는 양윤숙의진(楊允淑義陣)의 중군장으로 활동했으며, 1909년 초반에 독립한 것으로 보인다. 최산흥의진에 참여하여 1909년 음력 3월 약 20명의 의병과 함께 전북 순창군 구암면(龜巖面) 산내리(山內里) 이장(里長)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같은 해 음력 9월 2일에는 전북 순창군 무림면(茂林面) 유토내(酉土內)에서, 같은 해 10월 1일에는 무림면 운정리(雲頂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1월 21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 및 절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같은 해 8월 23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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