嚴俊燮
1874-09-2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엄준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엄준섭은 함남 장진군(長津郡) 신남면(新南面) 고토리(古土里)에서 독립만세운 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장진군은 고원지대라서 3·1운동의 소식이 비교적 늦게 전달되었다. 만세시위 의 발생 빈도도 적고 또 그 발생 장소도 고토리(古土里, 3월 14일), 초원(草原) 시장(3월 15일) 및 덕실리(德實里, 3월 19일)에 국한되었으나 다른 어느 곳보다 도 치열한 투쟁 양상을 보였고 피해도 매우 컸다. 장진에서 최초로 시위가 일어난 것은 3월 14일 고토리에서였다. 엄준섭 등 주 민 200여 명은 오후 4시에 고토리에 모여 만세를 부르고 시가행진을 하다가 헌 병주재소 앞에 이르러 더욱 소리를 높여 만세를 불렀다. 이에 헌병들은 시위대 에게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마구 폭행을 가하였다. 격분한 군중들도 이에 맞 서 큰 충돌이 벌어졌다. 헌병들은 군중에게 무차별사격을 가하였고 군중들은 헌병대 안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이때에는 이미 전신 시설이 파괴되어 외부와 의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었다. 이 때 헌병보조원 1명이 탈출하여 하통리(下通里) 헌병대에 달려가, 시위대가 헌병을 무참히 살해했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 이에 하통리 헌병대는 즉시 하갈 리(下碣里) 헌병대의 지원 아래 고토리에 와서 시위 군중을 짓밟고 해산시켰다. 이때 체포된 사람만도 100여명에 달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엄준섭은 1919년 7월 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상고했으나,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 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2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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