呂圭炳
1879-02-19 ~ 1935-08-04·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여규병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북 영동(永同) 사람이다. 영동군 학산면(鶴山面) 지내리(池內里)에 거주하면서 1919년 4월 16일 한문서당에서 동문수학(同門受學)한 바 있는 김승림(金升林)·여규일(呂圭一)·여중선(呂中仙)·박두업(朴斗業)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만드는 등 거사준비를 갖추고 주민들을 규합하였다. 때마침 영동(永同)에서 무주(茂朱)간 도로공사 부역에 나온 군중 수백명의 군중에게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고 그들과 함께 시위행진을 벌였다. 시위대열은 학산주재소까지 행진하여 주재소를 점거하여 기물 등을 파괴하고 일인이 임시로 심어둔 뽕나무 묘목에 불을 지르며 활동하다가 일경의 무차별 발포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시위가 강제 해산되어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붙잡혔다. 이해 6월 1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과 소요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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