呂鉉九
(1889) ~ 1920-11-0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여현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황해도 장연군(長淵郡) 읍내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20년 11월 옥중 순국하였다. 장연군 읍내시장에서는 여현구ㆍ강원보(姜元寶)ㆍ박영서(朴永瑞) 등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여현구는 3월 9일 밤 읍후리(邑後里) 자신의 집에서 이들과 논의하여, 3월 11일 장날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어 태극기를 만들고, 뜻을 같이할 사람을 모으기로 했다.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선언서를 장연읍 남문 성벽에 붙여 독립선언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경찰의 경계가 삼엄했지만 오후 1시경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200여 명의 군중이 시장으로 모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경찰이 주도자를 체포하자 군중은 경찰서로 가서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에 경찰은 시장을 강제로 폐쇄하고, 단속을 한층 강화하는 등 탄압에 나섰다. 이날의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여현구는 체포된 뒤 1919년 4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1919년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다 1920년 11월 5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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