延成七
미상 ~ 1910-04-11·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연성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에는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대한제국군 출신의 해산 군인을 비롯하여 평민 의병부대가 거의하여 의병전쟁을 전민족적 운동으로 발전시켜 갔다. 이와 같이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연성칠은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1910년 연기우(延起羽)의진에 입진하여 선봉장(先鋒將)으로 경기(京畿), 강원(江原)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연기우의진은 군률(軍律)이 엄정하여 민폐를 끼치는 일이 없어 도처에서 민심을 얻었으므로 많은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또한 황해도·경기도 일대의 의병진은 연기우의진을 중심으로 하여 이진룡(李鎭龍)·강기동(姜基東)의 3의진이 교묘히 이합집산을 해 가면서 각기 독자성을 가지고 활약하였고 부대 구성을 소수 정예 부대로 편성하여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그러자 1910년 2월부터 일제가 의병 탄압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었고 연성칠은 1910년 4월 11일 강원도 영평군(永平郡) 일동면(一東面)에서 영평분파소(永平分派所) 일본군과 교전중에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