廉達昊
(189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염달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민족대표 33인은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실천하였다. 이러한 소식은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함경남도 단천군으로 이어졌다. 이 지역의 만세운동은 단천 천도교구장(天道敎區長)인 염원형(廉元亨)이 주도하였다. 염원형이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한 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단천으로 돌아왔다. 염달호를 비롯한 천도교인들을 모아놓고 독립운동에 대한 뜻과 계획을 밝혔다. 염달호는 이에 찬성하여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먼저 교도들이 많이 모이는 3월 10일 기도일(祈禱日)에 배포할 「독립선언서」를 2백여 매 인쇄하였다. 3월 10일 교도들이 모이자 염원형 등은 독립운동의 취지를 연설하고 항일의식을 고무시켰다. 이어서 일제히 교구당을 출발하여 단천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본 헌병이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군중은 투석을 하며 시위를 지속했다. 그 과정에서 염달호는 일본 헌병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결국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3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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