廉承吉
(188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염승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염승길은 1919년 3월 함남 북청군(北靑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북청에서 처음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난 것은 3월 8일이었다. 그 동안 원산(元 山)·함흥(咸興)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소문이 퍼지자 북청의 천도교 도와 학생들은 암암리에 이곳에서의 시위를 모의하고 있었다. 3월 8일 오전 9 시, 읍내의 천도교도와 학생들 약 2백 50명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며시위에 들어갔다. 이들은 징과 북을 울리며 영덕산(靈德山)에 올라갔다. 시위는 곧 일경에 의하여 제지되고 해산당하였다. 3월 10일 정오에는 조석권(趙錫權)·이욱성(李郁性)·이기주(李基柱) 등의 주 도로 노덕면(老德面)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시위도 경찰의 제지로 해 산당했다. 시위 후 체포된 염승길은 1919년 7월 2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 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그는 공소했으나 9월 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 했고, 또다시 상고했으나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당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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