廉準模
1917-05-23 ~ 미상·현대
이명·자·호 상원민영(上原敏永)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염준모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6년 3월 경성전기학교(京城電氣學校)를 졸업했다. 4월부터 조선방송협회(朝鮮放送協會) 기술부에서 근무하였다. 1937년 3월 하순경 우연히 단파수신기(短波受信機)에 대해 알게되었다. 직접 단파수신기를 제작해 이를 조선방송협회와 경성부(京城府) 가회정(嘉會町) 자택 등에 설치하고 중국 충칭(重慶), 일본 도쿄(東京),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방송하는 방송을 몰래 들었다. 중일전쟁에서 중국군의 전과(戰果)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이나 독립운동의 상황을 들었다. 그 내용을 지인 등에게 여러 차례 알렸다. 1938년 3~4월경 경성부 제동정(齊洞町)에서 광창양복점(光昌洋服店)을 경영하던 마츠다 겐지(松田憲治)의 의뢰를 받아 그에게 단파수신기를 제작해 주었다. 7월경 경성중앙방송국에서 중국 충칭(重慶)의 조선어 방송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독립운동 소식을 접했다. 1943년 2월 일본 경찰에 체포될 때까지 그에게 여러 차례 내용을 전달하고, 또 양복점에 설치한 단파수신기로 샌프란시스코의 방송을 청취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솔로몬해전에서 미국의 승리, 일본 도조(東條) 내각 비방, 일본 보도내용의 허위성 등을 수시로 전파했다. 1940년 7월부터 조선방송협회 기술부 기수(技手)로 일했다. 1941년 6월경부터 1943년 2월까지 기술부 기술과 시험계실에 외국제 전파수신기를 설치하여 샌프란시스코의 선전방송 등을 들었다. 1942년 9월 상순경에는 조선방송협회 기술과 내의 재료를 이용해 단파수신기를 제작하여 가회동 자택에 설치하고, 1943년 2월까지 수시로 샌프란시스코 방송을 청취하였다. 이를 통해 알게 된 태평양의 해전(海戰)에서 미국과 연합군의 승전(勝戰) 상황 등을 유포하였다. 예컨대 1942년 12월 중순경 경성부 제동정의 이발소에서 히라모토 마사후쿠(平元昌福)에게 “솔로몬해 해전에서 우리 군의 손해는 근소한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는데 사실은 다대한 손해를 입은 것이라고 하며, 스탈린그라드에서의 독일군의 손해도 아국(我國)의 발표보다 더욱 크다”라고 설명했으며, 1943년 1월 하순경에는 대산건호(大山健浩)에게 일본 대본영(大本營)의 발표와 선전을 비판하는 내용을 설명하였다. 이른바 ‘단파방송 사건’으로 150여 명이 검거되던 상황에서, 1943년 2월에 이상의 활동이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6월 14일 ‘무선전신법(無線電信法) 위반’ 등으로 송치되었다. 9월 13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무선전신법 및 육해군형법(陸海軍刑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고 1944년 10월 8일에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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