廉學模
(1876) ~ 1921-12-17·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염학모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단천(端川) 사람이다.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서 활동하였다. 염학모가 활동했던 대한독립군비단은 1919년 3월 만주지역에서 3·1운동이 전개된 후 동년 5월경 함경남도 혜산진(惠山鎭) 대안(對岸) 장백현(長白縣)에서 함경남도 출신의 이희삼(李熙三)·이동백(李東白)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1919년 11월 1일경 이 단체의 주요 간부는 단장 이태걸(李泰杰), 부단장 김동준(金東俊), 총무장 김찬(金燦), 재무장 이동백(李東白), 경무부장 이광랍(李光拉), 참모장 서병호(徐丙鎬) 등 이었다. 염학모는 이 대한독립군비단에서 1920년 2월, 운동을 보다 활발히 전개하기 위하여 조직을 확대 개편하였을 때 재무부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인물로는 단장 이은향(李殷鄕), 부장(副長) 이태걸, 군사부장 이동백, 재무부장 윤덕보(尹德甫), 참모부장 김찬, 경찰부장 정삼성(鄭三星), 문사(文事)부장 김종기(金宗基), 외교부장 조훈(趙勳), 소집부장 김정익(金鼎益), 공창부장 김진무(金振武)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대한독립군비단에서는 지단 조직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19년 11월 1일 조직된 장백현 17도구(道溝)의 장백지단이다. 아울러 국내에도 지단 조직을 확대하였는데, 그 조직망은 대개 중심인물들의 원적지인 함경남도 지역이었다. 대표적인 지단으로는 함경도 단천(端川)지단과 북청(北靑)지단을 들 수 있다. 이처럼 대한독립군비단에서 활발히 지단 활동을 전개할 때, 염학모는 장백현 18도구(道溝) 대정정동(大町亭洞) 상리(上里) 지단장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가 이끄는 이 지단의 단원은 경찰원 18명, 통신원 15명 등이었으며, 무기소지 상황은 권총 4정, 탄약 150발 등이었다. 한편 염학모는 임시정부와 연계해서도 일을 전개하였는데 1921년 10월 함경남도 교통사무국 참사(參事)로서 활동하다가, 동년 12월 17일 병으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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