廉學燮
1896-12-30 ~ 1970-09-1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염학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이원(利原) 사람이다. 1919년 8월 26일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서 국내의 군자금 모집과 교통통신을 위한 목적으로 조직하여 국무원령으로 공포한 교통국(交通局) 조직중 함경남도 교통사무국의 참사( 事)로 임명되어 활동하는 한편, 풍산청년회원(豊山靑年會員) 및 통신원으로 활동하다가 독립군과의 연락왕래 사실이 탐지되어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는 1921년 4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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