葉鴻德
(1912) ~ (194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엽홍덕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서울 사람이다. 1941년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대원으로 활동하다 병사 순국하였다. 서울에서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을 다니던 엽홍덕은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뜻을 품고 1930년대 초 중국으로 망명하여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당시 의열단은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으며 남경(南京)에 본거지를 두고 단원들을 중앙군관학교(中央軍官學校)에 입교시켜 항일투사를 배출하고 있었다. 중앙군관학교 졸업 후 그는 김원봉(金元鳳)이 주도 결성한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가입하였다. 그후 엽홍덕은 민족혁명당이 주도한 1937년 7월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 이어 1938년 10월 10일 이 연맹 산하의 무력단체로 조직된 조선의용대에 합류하였다. 중일전쟁의 기세가 더욱 확대되는 가운데 1940년 말 조선의용대는 확대 간부회의를 개최하여 화북진출을 결정하였다. 이는 화북진출은 화북지방의 일본군 점령지역에 한국인 이주동포가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그곳에서 공작활동을 전개하고 국내 및 만주지방과 연락을 취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엽홍덕은 1941년 조선의용대의 화북진출에 참가하여 북상도중 낙양(洛陽)에서 병을 얻어 순국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8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