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斗天
(187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오두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부안(扶安) 출신으로 1909년 신도남의진(申道男義陣)에 참여하여 흥덕(興 德)·부안군 등지에서 포군(砲軍)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 이후 해산 군인이 의병에 합류함으로써 전 라도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부안·흥덕 지역에는 김영백의진(金永伯義 陣)·김영엽의진(金永燁義陣)·전해산의진(全海山義陣)·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 등의 의병진이 군자금을 모집하거나 군수품을 조달하면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 였다. 그러나 1909년 9월부터 시작된 일제의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南韓大討 伐作戰)으로 호남 지역의 의병에 대한 탄압이 강화됨에 따라 의병 활동은 침체 되고 말았다. 오두천은 1909년 음력 4월 28일부터 1909년 5월 10일까지 의병장 신도남의 휘 하에서 포군으로서 동료 의병 9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흥덕군과 부안군 일 대에서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오두천은 소위 폭동죄(暴動罪)로 기소되어 1909년 7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에 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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