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文吉
(187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오문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담양(潭陽) 출신으로 1909년 유종여의진(柳宗汝義陣)의 연락 임무를 맡아 전북 순창(淳昌)에서 활동하였다. 유종여는 유생으로 정읍에서 동학농민항쟁에 참여하고, 1907년 11월경 창의하여 1909년 5월까지 전북 순창·태인, 전남 담양·장성·광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던 의병장이다. 유종여는 1908년 음력 2월말부터 전북 순창 및 장성 일대에서 부하 60명과 활동하였으며, 1908년 11월 10일부터 1909년 음력 2월 10일까지 순창·담양·광주 일대에서 장순흥(張順興) 등과 총기 20정 및 칼을 휴대한 의병 30여 명을 지휘하여 식료품·짚신 등의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1909년 5월 8일 순창군 쌍치면(雙置面) 학선리(鶴仙里) 오룡촌(五龍村)에서 전사하였다. 오문길은 의병장 유종여가 담양군 일원에서 활동할 때 의병진에 가담하였다.그는 1909년 음력 4월 30일 경 유종여가 담양군 용남면(龍南面) 신기촌(新基村)에 거주하는 송선달(宋先達)에게 보내는 서장(書狀)을 전달하였고, 순창군 오정자(五亭子)에서는 유종여가 국태진에게 보내는 전언(傳言)을 보내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오문길은 1909년 10월 17일 체포되어 동년 1909년 10월 27일 소위 폭동죄(暴動罪)로 기소되어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3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