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伯汝
(186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오백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5월 북간도 왕청현(汪淸縣) 나자구(羅子溝)에서 국민의사부(國民議事部)의 재무부 부원으로 활동하였다. 수분대전자(綏芬大甸子)라고도 불리는 나자구는 북간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다른 어느 지역 못지않게 궁벽한 오지에 위치한 이 지역은 1910년대 초 한인의 개척마을이 여러 곳에 산재하여 1천호가 넘었다. 이 곳에 거주한 한인은 국내에서 직접 건너온 사람도 있었지만, 러시아 연해주에서 넘어온 사람도 많았다. 이곳의 한인 구성원들도 서북간도와 연해주지역의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들어 온 사람들이 많았다. 1913년에는 태흥학교(泰興學校)라는 민족학교가, 1914년에는 이동휘(李東輝)가 대전학교(大甸學校)라는 무관학교를 세워 많은 독립군 인재들을 양성하였다. 이같은 민족적 성향을 가진 나자구 거주한인들은 민족학교 이외 조국 독립을 목적으로 한 여러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오백여는 1919년 5월 나자구에 성립된 국민의사부 재무부의 부원으로 활동하다가 1920년 8월경에는 재무부 부장(副長)에 선임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2월경에는 나자구의 또 다른 독립운동 단체인 도독부(都督府)의 모연국 대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9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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