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相欽
1919-10-13 ~ 1949-05-07·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高山欽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오상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41년 3월에 경성약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오상흠은 동경도립석화학연구소(東京都立石化學硏究所)와 유한제약주식회사(柳韓製藥株式會社)에서 각각 근무하였다. 평소에 민족의식이 투철하였던 오상흠은 1942년 7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유예를 받고, 보호관찰하에 있었다. 이후 보호관찰이 풀리자 오상흠은 정문규(鄭文圭)로부터 독립운동에 사용될 폭탄을 제조하라는 권유를 받고 폭탄을 제조하려 하였으나, 재료를 구하지 못하여 실패하였다. 그러던 중 1944년 9월 15일경 경성약학전문학교 동창인 풍천일석(豊川一石)·고하인환(高河仁煥) 등과 경성 종로구 제동정(齊洞町) 46번지 풍천일석의 집에서 회합을 가졌다. 여기에서 오상흠은 일제가 패망하면 유력한 단체에 의해 민족운동이 전개될 것이니, 여기에 우리 과학자들이 동참하여야 한다고 결속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오상흠은 붙잡혀 1945년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