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泳瓚
1874-04-05 ~ 1936-06-0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오영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라남도 함평(咸平) 출신으로 의병장 김 준(金準)의 처남이다. 1905년 일제의 강제에 의하여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김 준에게 총 2,000정을 주어 의거를 도왔다. 1906년 10월 6일 김 준 의진과 기삼연(奇參衍) 의진이 합진하자 이에 참가하여 고창(高敞) 방등산(方登山), 영광(靈光)의 불갑산(佛甲山) 등지에서 왜군과 접전하였다. 이어서 나주(羅州) 영산포(榮山浦)에서 석성(石城)에 복병하였다가 적 120여명을 살해하고 무기 120여 정을 탈취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1908년 3월 25일 의병장 김 준이 나주 상박산(上博山)에 유진하고 박천(博川) 전투에서 적과 접전하던 중 전사하였을 때 오영찬은 이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두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12월 1일 장성(長城)에서 적에게 체포되어, 오영찬은 죽느니만 못하다고 여겨 속히 죽이라고 적을 크게 꾸짖었다. 적은 패군을 죽이는 것은 무익하다고 여겨 석방시켰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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