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堯燮
1908-02-26 ~ 1982-01-08·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오요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옥구(沃溝) 사람이다. 오요섭은 옥구군 서수면에서 소작투쟁을 전개하였다. 1927년 10월 2일 옥구군 서수면(瑞穗面)에서는 일본인 지주의 횡포에 대항하고, 소작인의 권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장태성(張台成)·박상호(朴相浩)·김영준(金寧俊) 등에 의해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瑞穗支會)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신문관(申文官)·정영운·최은엽 등과 더불어 회원 모집에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 회원수가 약 2백 명이 되었다. 1927년 11월 25일 서수면 서수리 소재 주식회사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이 소작농민들에 대하여 수확량의 75%에 달하는 과도한 소작료를 요구하자, 장태성과 김행규(金杏奎) 등은 농장의 일본인 지배인 제등신일(齊藤信一)에게 45%로 감액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지부장 장태성이 지배인을 협박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저녁 무렵 이진섭(李鎭燮)은 장태성이 군산경찰서로 이송되기 위해 서수면 임피(臨陂)경찰관주재소에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합원들에게 전하였다. 그러자 오요섭은 조합원 수백 명과 함께 밤 9시경 임피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건물을 파괴하고, 경찰을 구타하여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또 돌아가는 도중 서수주재소에 간부 박상호가 붙잡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밤 10시경 그곳을 습격하여 박상호를 구출하였다. 그러나 오요섭은 일본 경찰에 의해 조합원 및 농민 8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 사건으로 오요섭은 1928년 2월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소위 구금자 탈취 및 소요혐의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3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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