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義明
1896-11-2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오의명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일 정오를 지나자 각 학교 생도를 비롯하여 수만의 군중이 파고다공원에 집결하였다. 2시 무렵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불렀다. 공원을 나서면서 동서로 나뉜 시위대는 시내 주요 거리를 행진하며 ‘한국 독립’을 외쳤다. 협성신학교(현 감리교 신학대학) 2학년생 오의명은 파고다공원에서 만세를 부르고 서울 시내를 행진하는 시위에 가담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5시 400~500여 명의 학생들과 남대문로에서 충무로를 향해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부르고 행진하였다. 조선총독부를 향한 시위대는 충무로에서 막혔는데 군중이 계속 늘어나자 일제는 보병 3개 중대와 기병 1개 소대를 시내 주요 지점에 배치하여 만세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체포하였다. 체포된 오의명은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20년 4월 28일 감형되어 징역 ‘4월 15일’로 견경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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