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儀善
1879-03-29 ~ 1907-08-01·대한제국
이명·자·호 吳義善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오의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일제는 1907년 정미7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군을 해산하였다. 일제는 이를 위해 지금까지 있던 제13사단 병력 외에 제12여단을 증파하였고 총기 60,000여 정도 새로 들여왔다. 이와 같이 그들 나름으로 모든 방비를 갖춘 후 8월 1일 도수(徒手)체조 연습을 한다고 속이고 대한제국 시위대군을 훈련원에 비무장으로 집합시켜 강제로 군대를 해산하였다. 그러나 이에 항거하여 시위대 제 1, 2연대의 각 1대대는 부대 전체가 항쟁에 돌입하였다. 즉 제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朴昇煥)의 항의 자결에 소식은 전부대원의 재무장, 봉기를 촉발하였던 것이다. 이는 곧 옆에 있던 제2연대 1대대에도 파급되어 그들도 재무장하고 남대문과 서소문 일대에서 일본군과 불꽃 튀는 격전을 벌였다. 이 싸움에서 일본군 미미(梶尾) 중대장을 비롯하여 4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가 있었으나 한국군도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이와 같은 군대해산 과정에서 오의선은 대한제국군 육군보병 정위(正尉)로서 시위보병 제2연대 제1대대 중대장으로 근무 중 같은 해 8월 1일의 시위대 강제 해산에 항거하여 대대장 박승환을 따라 자결 순국하여 시위대군의 시가전을 촉발케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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