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在英
(1860)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字:元瑞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오재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일찍부터 북간도 일대에서 민족학교를 설립하고 교원으로 활동했다. 이로 인해 일본 관헌에 ‘배일선인(排日鮮人)’으로 지목되어 감시를 받았다. 1916년 중국 훈춘현 헤이딩즈에서 순치동제회(脣齒同濟會) 회원으로 활동했다. 1920년 10월 경신참변(庚申慘變) 당시에는 헤이딩즈에서 민족학교를 경영하다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1922년 훈춘현에서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 훈춘지단 통신부장(通信部長)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해 갔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7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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