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周三
(187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오주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오주삼은 1908년 경 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하여 문창범(文昌範)과 함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문창범은 1877년 경 부친을 따라 러시아지역으로 이주한 뒤 광동학교(光東學校)를 세워 민족교육을 실시하였고, 1917년에는 전로한족중앙총회(全露韓族中央總會)를 조직하여 그 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한 인물이다. 1919년에는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가 상해에 조직되자 교통부총장(交通部總長)으로 선임되기도 한 한국독립운동사의 중심인물이다. 오주삼은 이러한 경력을 가진 문창범과 함께 항일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1918년 오주삼은 문창범의 휘하에 있으면서 한족중앙회(韓族中央會) 회계로서 기부금을 모집하였고,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노인단(勞人團) 회계계(會計係)로서 의용단(義勇團) 지원에 노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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