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忠國
(187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오충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 6월 미주 공립협회(共立協會) 레드랜드지방회(紫地地方會) 회원, 1910년 2월 대한인국민회 프레스노지방회(富市地方會)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1913년경 다뉴바로 이주하여 이후 다뉴바지방회(丹楡培地方會)에서 활동하였다. 1914년 동 지방회 의무금 수봉위원(收捧委員), 1915년 재무, 1916년 재무 겸 학무가 되었다. 1920년 가을 캘리포니아주 리들리에서 과일과 채소를 말려 판매하는 리들리건제회사를 설립하고 1921년 재무로 근무하며 사장 김종림(金鍾林)을 보좌하였다. 1921년 5월 동 지방회 월연금 수합위원, 1924년 국어학교 재무로 활동하였다. 1931년 7월 중가주(中加州) 한인공동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임되어 회장 김호(金乎)를 보좌하였다. 11월 대한인국민회와 중가주공동회가 합석회의를 열고 미주 한인연합회를 발기할 때, 김호와 함께 중가주공동회 대표로 참석하여 서명하였다. 1932년 9월 둘째 아들의 학업을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였다. 1942년 6월 다시 다뉴바로 이주하였다. 로스앤젤레스에 있을 당시 부인 오경심은 대한여자애국단 로스앤젤레스지부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부터 1945년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7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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