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泰善
(1895) ~ 1927-09-13·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吳成民, 吳春園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오태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5년 5월 일제에 맞서 격렬하게 항일 의열투쟁을 벌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의열단은 “조선민족의 생존의 적인 일본제국주의 통치를 근본적으로 타도하여 조선민족의 자유독립을 완성할 것”을 목표로 하고 1919년에 비밀결사로 창립되었다. 창립 이후 약 5년간 실로 과감하고도 치열한 의열투쟁을 국내외에서 전개하였다. 창립한 장소는 중국 길림성(吉林省)이었으나 철저한 비밀주의를 지켜 그 장소가 세상에 노출되지 않았고, 활동을 펼칠 때에는 일정한 근거지를 가지기 보다는 중국의 상해(上海)·북경(北京)·천진(天津) 등지를 왕래하면서 의거(義擧) 목표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러한 의열단의 단원이 된 오태선은 1926년 음력 1월 20일경 동지 김국창(金國昌)·한석태(韓碩泰) 등과 함께 북간도 연길현(延吉縣) 화광자(樺光子)에서 군자금 20원을 모금하였다. 이후 오석태는 동지 3명과 함께 화룡현(和龍縣)과 연길현 등을 옮겨 다니면서 약 600원의 의열단 활동자금을 모금하다가 1926년 7월 17일 일제의 간도총영사관(間島總領事館) 경찰에 체포되었다. 오태선은 일제로부터 소위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의 후유증으로 중병을 얻어 1927년 9월 13일 옥중에서 사망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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