玉富潤
미상 ~ 1920-08-09·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옥부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만주 유하(柳河)·통화현(通化縣) 등을 기반으로 구축된 독립운동 단체인 한족회(韓族會)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한족회는 1911년 서간도 이주 한인사회가 최초로 만든 경학사(耕學社)와 그를 이은 부민단(扶民團)의 제도와 사업을 이어 받아 1919년 1월 설립된 단체였다.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본부를 두고 한인사회가 형성된 주변 지역에 지방기구를 설치해 한인들의 생존을 지원했다. 그와 함께 민족학교를 세워 한인자제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와 같은 독립군양성 기관을 설치해 독립전쟁을 준비했다. 이 같은 한족회에는 수많은 망명 애국인사들이 가담해 민족의 삶을 부활시키는 한편 조국독립을 도모했다. 따라서 이 단체의 활동은 침략자 일제에게 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1920년 초부터 한족회의 세력을 소멸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 중반 일제는 중국 마적 두목 장강호(長江好)를 매수하여 한족회 소속의 한국 독립운동자들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옥부윤은 한족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1920년 음력 5월 일제의 사주를 받은 장강호 마적단에 붙잡혔다. 그리고 이 마적단에 의해 몽강현(濛江縣)으로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하다가 그 해 8월 9일 압록강 상류 삼림 속에서 살해당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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