禹炳玉
(1893)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禹秉玉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우병옥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893년경 평안남도(平安南道) 중화군(中和郡)에서 출생하였으며, 가족들과 하와이로 이민을 가서 1907년 한인기숙학교에서 공부했다. 1909년 10월 호놀룰루 경찰서의 한인 경찰이 되었으며, 1910년 3월 29일에도 경찰에 피임되어 한인들을 보호했다. 하와이에서 활동하다가 1917년 5월 북미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1920년 6월 디트로이트 비행학교에서 비행기 수선과를 졸업하였다. 1920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군무총장 노백린(盧伯麟)과 재미 재력가들을 중심으로 북부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 한인비행가양성소(韓人飛行家養成所)에서 생도를 모집하였다. 같은 해 7월 7일 한인비행가양성소에서는 디트로이트 비행학교를 졸업한 우병옥, 레드우드 비행학교를 졸업한 오임하·이용선·이초 4명에 대한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이들 4명은 한인비행가양성소에서 교관을 돕는 조교로 활동하였다. 1924~1925년도 대한인국민회 새크라멘토지방회의 서기로 임명되었다. 1931년 6월 우병옥은 임정구 등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지역 한인들의 생활 향상을 위한 실업연구회를 조직하였다. 1935년 3월 샌프란시스코 국어학교의 재무로 한인 2세들을 민족교육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였다. 이후 하와이로 다시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1919년부터 1942년까지 의무금, 인구세, 광복군후원금, 승전행렬경비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납부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2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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