禹時夏
(1879)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禹時華, 禹時和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우시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8년 12월 공립협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桑港地方會) 특별회원으로 활동했다. 1909년 국민회(國民會) 블라디보스토크지방회(浦塩地方會) 임시사찰로 임명되어 러시아령으로 건너갔다. 1912년 권업회(勸業會)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이규풍(李圭豊)과 함께 의병 재기를 준비했다. 1915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에도 쑤즈허(蘇子河) 한인총회 총회장으로 활동하며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이끌어 갔다. 1921년 초 고려노농군회(高麗勞農軍會) 선전 담당으로 활동하며 동포들에게 독립의식을 전파했다. 한인학교를 설립하여 한인청년들에게 민족과 독립의식을 교육시켰다. 1923년 6월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서 조직된 국민위원회 고문원(顧問院)에서 고문으로 선임되었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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