禹熙元
1901-02-05 ~ 1978-01-09·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우희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1일 경북 의성군(義城郡) 비안면(比安面) 비안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추진하고 12일 비안공립학교 뒷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우희원은 비안공립학교 학생으로 1919년 3월 9일 경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박만녕(朴萬寧)의 권유를 받아 11일 비안장날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11일 오전 학생 150명을 집합시켜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고 오후 장터에 모였으나 일경의 삼엄한 경비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지 못했다. 다시 12일 오전 전교생을 모아 뒷산에 오른 후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로 인해 우희원은 체포되어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1919년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6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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