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厚貞
1922-05-27 ~ 1995-07-29·현대
이명·자·호 原元厚貞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원후정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횡성(橫城) 사람이다. 1938년 가을에 춘천중학교의 항일학생결사 상록회(常綠會)가 일경에 발각되어 전회원이 검거된 후 춘천중학생들은 민족적인 서적을 구독하고 독후감교환 및 토론을 통하여 항일의식을 제고하면서 민족의 진로를 찾고자 독서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독서운동의 활동 내용과 성격은 상록회와 거의 같은 것이었으나 이들은 조직체의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미 상록회가 발각되었으므로 다시 조직체를 갖는다는 것은 오히려 활동에 불리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직의 형식은 없었지만 이들은 독서운동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심화시켜 갔다. 그러던 중 1941년 3월에 그는 심재진(沈在震)·고제훈(高濟勳)·김영근(金榮根)·박영한(朴泳漢)·권혁민(權赫民) 등과 함께 민족차별에 분개하고 춘천중학교 교정에서 일인 학생들과 무력 충돌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싸움의 규모가 컸으므로 일경이 개입하게 되었고, 이때 한국학생들을 탄압했던 것은 물론이고 춘천중학생의 독서운동도 발각되었다. 그리하여 그도 일경에 붙잡혔고, 붙잡힌 후 1년여동안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2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또 소위 폭행죄로는 징역 단기 6월, 장기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중 1945년 8·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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