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基萬
1906-04-11 ~ 1952-02-1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柳驥應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기만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까지 경북 안동(安東)에서 인쇄업·제유업에 종사하면서 신간회 안동지회·안동청년동맹 예안지부·안동콤그룹·예안노농행동대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유기만은 1931년 3월에 결성된 안동콤그룹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안동콤그룹은 1931년 5월에 신간회가 해소되자, 신간회 회원들을 주축으로 와룡·예안·임하 등 각 면에 면 그룹을 두었다. 그리고 안동·봉화·영주 등지에서 노동자·농민·청년들을 대상으로 각종 강좌와 야학 등을 개최하여 민족의식을 심어주고, 민중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대중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7월 유기만은 안동군 예안면 동부동(東部洞) 낙동강안에서 항일 비밀결사 예안노농행동대(禮安勞農行動隊) 결성에 참여하여 조직 훈련의 책임자로 선임되었다. 1933년 5월 하순 경 경북 경찰부와 안동경찰서의 연합 작전으로 유기만은 1933년 8월 체포당하였다. 1934년 7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받고 7월 3일 석방될 때까지 11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6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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