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達永
1911-05-06 ~ 2004-10-27·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달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8년 4월 서울 양정고등보통학교(養正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여 1933년 이 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뒤 수원고등농림학교에 진학하여 1936년 졸업하였다. 양정고보 재학 시절 이 학교 교사였던 김교신(金敎臣)에게 민족의식을 전수받게 되었다. 김교신이 1927년부터 발간하던 기독교 민족주의의 신앙 동인지인『성서조선(聖書朝鮮)』을 구독하고 투고도 하였다. 나아가 김교신이 주재하던 성서연구회(聖書硏究會)에 참여하여 조선의 독립 방략을 김교신·함석헌(咸錫憲) 등과 함께 여러 차례 협의하였다. 그 뒤 수원고농을 졸업한 뒤 개성의 명덕고등여학교(明德高等女學校)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기독교를 통한 민족의식 고취 활동을 벌였다. 1942년 3월『성서조선』 제158호에 실린 권두언 ‘조와’(弔蛙, 개구리의 죽음을 슬퍼함)가 어떤 혹한에도 살아남는 민족의 희망을 개구리의 생명력을 빌어 노래했다는 일제 검찰측의 해석에 의하여 김교신이 발간하던『성서조선』은 폐간되었다. 이때 김교신을 비롯하여『성서조선』에 연관된 전국 300여 명의 독자·동지들이 일경에 체포되는 ‘성서조선사건’이 발생하였다. 1942년 6월 12일 소위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체포되어 함석헌·송두영 등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2004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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