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命錫
1884-02-27 ~ 1930-12-0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명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라북도 완주(完州)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일제의 강요에 의하여 늑결되자 1906년 10월경 유씨 일문의 9명과 더불어 의병이 되어 익산(益山)군내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7년 10월 유현석(柳炫錫) 등 7인과 더불어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礪山面 源水里) 노상에서, 1907년 10월 한흥수(韓興洙)의 집에서, 그리고 1906년 10월과 1907년 5월에 이봉승(李奉承)의 집에서 2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활약하였다. 그후 의진을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신하였으나 그간의 활약상이 적에게 노출되어 체포되었다. 1917년 전주에서 소위 강도죄로 1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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