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福永
1887-03-21 ~ 1937-07-0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유복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청남도 대덕(大德) 사람이다. 1919년 3·1운동 때 법원 입회서기(立會書記)로 근무 중 평안남도 순천(順川)에서 일본검사가 주동자에게 심한 고문을 가하므로 그 가혹행위를 규탄하고 현장에서 일본검사의 뺨을 때렸다. 이로 인하여 그후 시험에 합격하고서도 항일불순분자로 지목되어 판사 임관이나 변호사인가를 수삼년 해주지 않는 등 박해를 받았다. 그후 변호사가 되었을 때에도 항상 한복을 입고 변론에 임하며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때에는 일본 관헌의 온갖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서울에서 내려 온 김병로(金炳魯)와 합동하여 구속학생들의 무료변론을 담당하여 진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